EXHIBITIONS

Layers of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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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한 겹 한 겹 쌓이며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은 다시 풍경이 되어 우리 앞에 선다.

이기숙 작가의 회화는 그렇게 ‘시간의 층’을 쌓아 올려 완성되는 조형의 언어이자,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내면의 응시이다.


작가는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영원’에 대한 갈망과 집착을 예술로 풀어낸다.

암각화의 선각(線刻)에서 발견한 원초적 생명력, 그리고 그 안에 축적된 시간은 작가에게 존재의 근원으로 다가왔다. 캔버스 위에 여러 겹의 한지를 붙이고, 흙을 바르고, 젖은 상태에서 긁고 찢으며 만들어지는 ‘각인된 선’은 단순한 흔적이 아니라 시간의 기억이며, 생의 궤적이다. 수십 번의 채색과 물의 스밈, 열처리와 샌딩의 반복 속에서 선은 다시 살아나고, 그 위로 감정의 선과 자연의 선이 겹쳐지며 하나의 새로운 공간을 연다.


이기숙의 회화는 풍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억과 시간, 감정이 켜켜이 쌓인 내면의 풍경이다.

절제된 색채와 흙빛의 질감은 분청사기의 온기 있는 회백색을 떠올리게 하고, 흙과 한지가 만나 이루는 질박하면서도 유기적인 표면은 한국적인 미의식의 원형을 담아낸다.

그는 ‘선(線)’을 통해 자연의 순환과 인간의 유한성을 함께 그려내며, 찰나의 흔적 속에서도 영원의 시간을 발견한다.


《Layers of Time》은 작가가 오랜 시간 탐구해 온 ‘선과 시간, 그리고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 겹 한 겹 쌓인 화면 속에는 삶의 흔적과 기억, 그리고 그 너머의 평화로운 풍경이 스며 있다.

그것은 잊혀진 유년의 기억이자, 우리 모두의 내면에 남아 있는 원형적 풍경이다.

아득하고도 따뜻한 이 풍경 속에서, 관객은 자신 안의 시간을 마주하며 또 다른 ‘영원의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