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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뉘, 숲의 번지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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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들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나무에 꼭 붙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다양한 방향으로 서로서로 엇갈려 나무를 감아 올라갔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다 갈 길을 잃고 떨어진 가지들은 살길을 찾아 가장 가까운 다른 나무를 찾거나 자신이 붙어있던 나무로 다시 돌아가려 힘썼다. 그렇게 나무들은 굽이굽이 다양하게 휘어지고 뒤틀어지며 그전에 숲에서 볼 수 없던 모양새를 만들어냈다. 나무에 서로 다른 형태로 엉겨붙어 자란 식물들과 어느새 얇은 나무의 형태를 띤 가지들은 서로 얽히고 설켜 덤불이 되었다. 몸속의 가시들을 밖으로 꺼내었다.

- 가시숲 중에서

 

덤불 속에 있는 식물과 동물들은 활기차고 기분 좋은 나날을 보내며 더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덜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섬에 점점 가시덤불이 많아지자 사람들의 터전이 위협을 받는다 생각했다. 덤불과 사람의 싸움이 시작됐다.

- 가시덤불 중에서

 

 

바람은 나무들의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유연하면서 얇고 질기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넝쿨 씨앗들을 땅에 마구마구 뿌려 주었다. 나무들이 최대한 많이 가져다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가시박, 돼지풀, 꺼끄랭이풀, 애기수영, 양미역취, 털불참새피, 물참새리, 도깨비가지들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성장해갔고 나무들에 기대어 하늘로 하늘로 계속 올라갔다. 이 중에 제일 으뜸은 가시박이었다. 가을이 되면 흰 가시로 뒤덮인 별사탕 모양의 열매가 1그루당 2 5천개 이상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 별사탕은 정말 좋은 무기였다.

- 가시덤불 중에서

 

 

인간의 눈에 침묵의 숲으로 다가올 뿐, 숲에서는 매일매일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나무와 풀이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거친 싸움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생이 안정적으로 갖추어진 숲에서는 일종의 휴전협정이 맺어져 있다. 비교적 안정적 조건에서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며(차마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리라!) 숲의 공동체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 펠릭스(Felix R.Paturi),《숲》

 

 

모든 생명체에는 존재의 이유가 있다. 심지어 썩어버린 고목에게도 살아있는 초목에 양분을 제공하기 위한 존재가치가 있다. 하지만 환경보호를 위해 꽃꽂이하듯 눈에 보기좋은 것만 수집하고 그 외의 것들을 쓰레기 취급하며 불태우고 버리는 숲의 조경은 자연생태계를 파괴하는 일과 마찬가지이다.

- 「자연결핍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