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생명의 시믈라크르
본문
금속공예의 정통성에서 출발한 황인철 작가는 수십 년에 걸쳐 조각, 환경조형, 설치 등 다양한 조형 영역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예술적 언어를 확장해왔습니다. 전통적인 공예기법을 기반으로 하되, 그 영역을 끊임없이 제약 너머로 밀어내며 새로운 조형 세계를 구축해온 그의 궤적에는 언제나 ‘근원’과 ‘생명’이라는 큰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사물의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구조, 존재를 성립시키는 힘의 흐름, 그리고 생명의 원형을 향한 그의 탐구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밀도 있는 깊이를 품어 왔습니다.
그의 작품을 마주할 때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특정 존재를 명확히 가리키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친숙한 생명체의 감각입니다. 새나 물고기, 소, 혹은 인간의 형상을 어렴풋이 연상시키지만, 결코 어느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 기묘한 존재들—이들은 황인철이 창조한 새로운 형태의 ‘시믈라크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실의 구체적 재현이나 서술적 형상을 지양하고, 서로 다른 개체의 이미지와 구조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낳은 이 형상들은 본래의 정체성을 벗어남으로써 오히려 더 강렬한 생명력을 드러냅니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조형물들은 하나의 완결된 생명체라기보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장하며 또다시 생성되는 과정으로서의 생명을 보여줍니다. 매끄러운 선의 흐름, 유기적 질감, 안팎을 관통하는 리듬감 있는 구조들은 시작과 끝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순환적이며, 그 순환의 운동이 곧 생명의 본질이라는 작가의 오래된 확신을 말해줍니다. 금속이라는 물성이 지닌 차가움과 단단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마치 자연 안에서 스스로 자라난 듯한 온기와 숨결을 느끼게 합니다.
황인철의 조형 언어가 견고하게 구축되기까지의 과정은 단순히 형식적 실험의 연속이 아니라, 끊임없는 회귀와 성찰, 그리고 원초적 생명성에 대한 집요한 질문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그는 물질을 다루는 기술자이자 조형 세계의 탐험가로서, 존재의 내부에서 움직이는 힘을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시각화하는 일을 자신만의 미학으로서 지속해 왔습니다. 그 결과 그의 작품들은 현실과 비현실, 자연과 상상, 생명과 비생명의 경계를 흐리며,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새롭게 환기시킵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작가의 오랜 여정을 다시금 조명하는 자리이자, 그가 만들어온 생명의 이미지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시 피어나는 순간이 될 것입니다. 생명은 한 번의 탄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되고 순환하며, 서로 다른 형태로 다시 태어나는 힘이라는 것—황인철의 작품들은 그 진리를 조용하지만 강하게 말해줍니다.
깊어가는 계절, 그의 작품을 통해 생명이 가진 원형의 아름다움과 아직 오지 않은 새로운 가능성들을 함께 상상해보시길 바랍니다. 작품들이 품고 있는 유기적 흐름과 근원의 울림이 관람객 한 분 한 분에게 잔잔한 여운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