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니박 CHUNI PARK
본문
추니박(b.1966) 작가의 신작들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침묵하는 것도 아니다. 먹의 검은 물결이 화면을 천천히 장악하면서, 관람자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고르게 된다. 이번 개인전 〈그곳에 가고 싶다, 섬〉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채색을 걷어내고 수묵 본연의 언어로 돌아간 전시다. 작가 스스로 "이번엔 저의 먹그림을 보여주려고 수묵작업을 위주로 했다"고 밝혔듯, 이 선택은 단순한 기법의 전환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론적 결단이다.
필자는 2025년 비디갤러리의《The Whisper of Nature》2인전에서 추니박의 작업을 감상하며, 아시아의 모필과 서구적 색면(色面)이 충돌하고 융합하는 그의 독창적 회화 세계를 논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그 충돌을 잠시 내려놓았다. 색면의 쾌감 대신 먹 농담(濃淡)의 침묵을 선택했다. 이 선택이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그 침묵 속에서 작가의 목소리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
현장에서 마음으로, 마음에서 먹으로
추니박 작가의 작업 방식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현장 사생(現場 寫生)의 윤리다. 작가는 하동 섬진강변의 매화밭에서, 거제와 고성의 바닷가에서, 남해 은점마을의 다도해 앞, 도담삼봉과 독도를 바라보며 직접 붓을 들었다. 이것은 단순한 취재가 아니다. 작가는 말한다 "저는 풍경을 보고 제 안에 들어온 풍경을 마음으로 다시 그립니다." 풍경이 눈을 통과해 마음에 착지하고, 그 마음의 풍경이 다시 먹으로 화면에 번질 때, 작품은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존재 체험의 기록이 된다. 이 점에서 이번 수묵 작업들은 이전의 채색 작업들과 다른 층위에 있다. 채색이 현장의 색감과 감흥을 포착하는 언어라면, 수묵은 현장이 마음속에 남긴 본질적인 형태를 추출하는 언어다. 먹은 색채를 멀리함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어둠 속에서 윤곽만으로 존재하는 섬처럼, 먹화의 대상들은 '무엇인가'보다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작품은 125×340cm인 300호 크기로 <형제섬이 있는 제주 산방산의 숲바다>인데 '숲바다'는 '곶자왈'을 의미하고 이 시리즈는 작가가 지속적으로 그려오고 있는 주제다. 120호 크기의 <통영 거제 사이의 바다와 하동매화>와, 같은 크기의 <독도와 한국의 바위섬들>도 주목할 만하다. 그 외에도 경남 고성, 강화도, 흑산도 아리랑고개, 전남 고흥, 통영 연화도 용머리해안 작업 등을 통해 지속해서 먹작업을 하면서 수묵에 대한 다양성을 실험해 오고 있는 흔적들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추니박은 2006년 이래 이어온 섬 시리즈의 본질을 수묵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언어로 재정제했다. 달빛 아래 수양매화는 절개가 아니라 지속의 미학을 말하고, 고래섬과 차귀도는 고립이 아니라 관계의 형상을 드러내며, 낙조와 달빛은 시간의 끝과 시작이 겹쳐지는 지점을 가시화한다. 먹 농담이 짙게 베어 있듯, 이 풍경들은 한 번에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스며드는 방식으로 관람자에게 도달한다.
전시장을 나서며 필자는 작가의 말을 다시 떠올린다. "저의 그림은 저의 오늘을 그리는 가장 솔직한 고백입니다."〈그곳에 가고 싶다, 섬〉은 그러므로 풍경화가 아니다. 그것은 고백의 기록이고, 먹이 간직한 우리 섬들의 혼(魂)이다. 섬은 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니라, 세계를 다르게 연결하는 방식이다 - 이 전시가 남기는 가장 깊은 물음이기도 하다.
이상민(미술인문 작가, 한국작가후원연대 이사장) 서문 중에서
- 다음글윤영혜 YOON Young Hye 26.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