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혁 PARK Inhyuk
본문
나의 회화는 몸에서 시작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수련해온 무술과 매일 반복되는 신체 훈련을 통해, 몸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감각과 기억, 시간과 장소를 담아내는 하나의 전체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 몸이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리듬과 호흡, 긴장과 이완의 변화는 화면 위의 선과 면으로 남는다. 그래서 나의 그림은 언제나 신체의 흔적이며, 몸의 사고와 몸의 기억이 시각적 흔적이 된 결과다.
작업의 과정은 직관과 계산이 공존하는 지점에 놓여 있다.
손으로 직접 긋는 선들은 즉흥적인 에너지, 충동, 순간의 진동을 담고 있다. 반면 붓으로 쌓아 올린 면들은 차분한 구조, 시간의 누적, 화면을 호흡하게 하는 질서를 형성한다. 이 두 가지가 부딪히고 화해하며, 화면은 하나의 리듬의 장(場)이 된다. 선은 파장처럼 떨리고, 면은 그 떨림을 품으며 공간을 확장한다.
나는 자연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자연이 가진 생명력의 흐름, 보이지 않는 기운, 계절의 떨림, 풍경 이전의 풍경을 그리고 싶다. 화면에 겹겹이 쌓이는 선들은 뿌리, 바람, 혈관, 파도, 잔가지, 혹은 땅속의 진동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 형태들은 무엇을 닮았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닮지 않은 비재현적 풍경이다. 그것은 존재의 미시적인 움직임, 그리고 세계가 생성되는 과정의 흔적이다.
나의 작업은 늘 ‘미완’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완성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자연과 생명, 그리고 몸은 언제나 변화하고 움직이며 계속해서 생성되기 때문이다. 화면 역시 멈추어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혼돈 속에서 질서를 만들며, 질서 속에서도 다시 흔들린다. 나는 이 혼돈과 질서의 동시적 존재를 회화로 드러내고자 한다.
최근에는 색과 선, 밝음과 어둠, 여백과 밀도를 대비시키며, 몸의 리듬과 자연의 진동이 어떻게 서로 울리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한 화면에 서로 다른 계절을 담거나, 미시적인 선들의 움직임 속에서 거대한 풍경의 기운이 드러나는 순간을 발견하기도 한다.
결국 나의 회화는
몸에서 출발해 자연으로 확장되고,
자연에서 다시 몸으로 돌아오는 순환의 기록이다.
그 기록은 언어 이전의 언어이며, 음악의 멜로디처럼 반복과 변주를 품고 있고,
생명의 떨림처럼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이 흔들림, 이 미완의 리듬 속에서
몸의 에너지와 자연의 시간을 이어 적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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